강릉시립미술관은 2006년 9월 강릉미술관으로 출발하여 2013년 4월 강원도 유일의 시립미술관으로 재개관한하였습니다. 강릉시내의 전경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곳에 위치하고 있는 강릉시립미술관은 아담한 2층건물에 160여평의 전시공간을 갖추고 있으며 각각의 전시실은 짜임새 있는 정결한 공간으로 이루어져 있어 누구나 자신의 작품을 전시하고 싶은 의욕을 갖게하는 전시실로 구성 되어있습니다.
예술적, 학문적, 역사적으로 소장가치가 있는 작품을 수집하고 조사 연구하며 한국미의 원류를 찾고 이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하여 작품에 치열하게 반영 된 작가를 발굴하고 그 작품을 관리하여 강릉시가 추구하는 관광산업과 연계하고 고품격의 미술 문화를 강릉시민이 적극적으로 즐기고 소통하여 높은 미의식을 향유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미술관입니다.
1층
제 1 전시실, 제 2 전시실로 나뉘어진 약 75평 규모의 공간을 가지고 있다.
2층
제3 전시실, 제 4 전시실, 제 5 전시실로 구서되어 있고, 약 85평 규모의 전시 공간을 가지고 있다.
2층의 각 전시실은 공간 분리 및 연결 전시가 가능하다.
1층 구본장
강릉시립미술관 기획 《구본창 - 탈 너머: 강릉관노가면극》展
강릉시립미술관 기획전시 《구본창 – 탈 너머: 강릉관노가면극》展은 한국 현대미술의 지형도를 바꾼 사진작가 구본창의 <강릉관노가면극> 시리즈를 선보이는 전시다. 구본창은 독일 유학 후 1980년대 작업에서 사진 매체를 통해 조형성을 실험하며 예술의 표현방식을 확장하였다. 그는 2000년대 초반부터 ‘탈’, ‘조선백자’와 같은 한국 고유의 소재를 특유의 회화적 기법으로 프레임 안에 담아내면서 세계적 작가로서 자리매김하였다.
구본창의 <탈> 시리즈는 강릉관노가면극을 비롯하여 가산오광대, 양주별산대놀이, 하회탈놀이, 봉산탈춤 등 조선 연희극
의 가면을 중심 소재로 다룬 작업으로, 주로 2000년대 초반에 촬영한 사진이다. 구본창은 <강릉관노가면극> 작품으로 2003년 강원다큐멘터리 작가상을 수상하였으며, 해외에서도 크게 주목받았다. 이번 전시는 기존에 알려진 작품 외에도 미공개 작품 19점 가량을 최초로 선보이며 <강릉관노가면극> 작품을 대거 감상할 수 있는 자리다. 관노가면극은 강릉단오제의 연희극의 탈로서 한국 전통 가면극 중에서 유일하게 대사가 없는 무언극이다. 극의 등장인물인 양반광대와 소매각시, 시시딱딱이, 그리고 장자마리의 가면과 몸짓에는 많은 이야기가 함축되어 있으며, 그만큼 이미지의 상징성이 강하다. 이러한 특징은 대상을 은유적으로 드러내는 구본창의 작업과 맞닿아 있다.
구본창이 담아낸 강릉관노가면극의 장면은 본래의 극의 모습과는 다르다. 사진 속의 탈을 쓴 사람들은 그가 연출한 상황에 놓여 있다. 그 프레임은 관노가면극을 위해 작가가 깔아놓은 또 하나의 판인 셈이다. 탈의 이미지에 내재된 고뇌와 해학은 구본창 특유의 방식을 통해 드러난다. 그들은 어딘가 모르게 기괴하거나 어색하다. 특히 사진의 하단, 인물의 발 부분은 초점이 흐릿한데, 이 때문에 몸이 붕 떠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처럼 그의 사진은 익숙한 소재를 낯설게 만들어 초현실적 분위기를 자아낸다. 사진은 다른 조형예술과 달리 사람이 발 딛은 현실에서 출발하는 매체이기 때문에 역으로 초현실적 감각을 담아내기에 가장 효과적이기도 하다. 그는 사진 매체의 역설적인 속성을 활용하여 탈이라는 소재 너머의 정신성에 주목한 것이다.
또한 그의 <탈> 시리즈는 주로 흑백으로 인화된다. 이러한 형식은 소재를 기록하는 것이 아닌 내면세계를 투사하기 위함
이다. 탈은 얼굴을 가리고 개인의 정체를 숨기는 역할을 하지만 동시에 사회집단의 성향, 공동의 정신세계를 드러낸다.
따라서 탈의 이미지는 그 자체로 무의식과 욕망에 대한 상징이다. 구본창은 탈이라는 문화의 근원적인 형태를 통해 인간의 본질에 대해 탐구한 것이다.
한편 이번 전시에서는 탈에 가려진 얼굴이 공개된다. ‘강릉관노가면’뿐 아니라 다른 ‘탈’ 연작에서도 볼 수 없었던 모습이
다. 그들은 당시 강릉관노가면극 보존회(現 강릉단오제 보존회 산하)의 회장을 비롯한 회원들이다. 구본창은 탈을 쓰는 사람을 일종의 박제품에 생명력을 부여하는 존재로서 바라보았다. 감춰져 있었던 그들의 민낯은 탈의 본연의 기능을 강조하며 실재와 가상의 경계를 일깨운다. 또한 전통문화를 계승하고 지켜온 수많은 사람들과 그로 인한 유구한 역사를 상기시킨다.
오래된 것, 사라지는 것, 또는 감춰진 것에 대한 애틋한 시선은 그의 작업을 관통하는 주제다. 대상의 어떤 불완전한 속성은 그의 사진을 통해 영속성을 부여받고 온전한 지위를 갖게 된다. 한국 전통문화 유산의 미적 가치를 새로이 담아내
고, 강릉의 지역성 및 역사성을 재해석한 구본창의 작품 <강릉관노가면극>은 한국 사진사의 업적이자, 강릉의 또 하나의 기념비로 남을 것이다.
2층 그대로 박생광
강릉시립미술관 특별전시 <그대로 박생광展 >
한국 현대 채색화의 거장, 박생광(朴生光, 1904~1985)의 작품을 강릉시립미술관 특별전시 《그대로 박생광》展에서 만나본다. 박생광은 1980년대에 채색화의 독자적 양식을 구축하며 단색화가 주류였던 기존의 한국 미술계에서 새로운 흐름을 주도
하였다. 그는 전통문화의 이미지들, 전통회화의 소재와 형식을 재해석하였으며, 특히 민간신앙의 주제를 다루면서 전통문화의 근원을 구현하고자 하였다. 그의 그림은 오방색을 응용한 강렬한 색채와 주홍색의 굵은 윤곽선, 대담한 구도와 같은 특유의 양식을 통해 작가의 호를 딴 ‘그대로 화풍’으로 일컬어졌다. 이 과정에서 그는 민화의 물감과 단청의 안료, 그 밖의 재료들을 조합하는 새로운 채색 기법을 사용하기도 했다. 박생광의 이러한 그림은 단절된 채색화의 전통을 주체적으로 계승하였다.
이번 전시에서는 박생광의 1970년대 후반~1980년대 회화를 살펴볼 수 있다. 1960년대부터 ‘내고(乃古)’로 불린 그는 1977년부터 아호를 순한글인 ‘그대로’로 바꾸었다. 이러한 변화는 그가 한국적 그림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나타난 것으로, 소재
를 뛰어넘어 정신적 차원에서 작품세계를 아우르고자 했던 그의 의지를 보여준다. 1920~1930년대와 1970년대 중반에 일본
에서 활동한 그는 다양한 조형적 형식들을 실험하는 과정에서 왜색 논란을 피하지 못했다. 그러나 결국 1980년대 그의 그림은 작가 고유의 조형적 특징과 궁극적인 작품세계를 인정받으며 새로운 한국화의 길을 열었다는 재평가가 이루어졌다. 이처럼 박생광은 여든을 앞둔 고령의 시기에 독자적인 양식을 만들었을 뿐 아니라, 1985년의 서거 이전 5년 동안 대작들을 쏟아낸 독특한 이력을 보여준다. 그는 말년에 후두암 선고를 받고 나서도 800호짜리 대형 그림을 하루 열 시간 이상 그렸으며, 역사와 전통, 민족의 정서를 구현하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밝힌 바 있다.
강릉시립미술관 특별전시 《그대로 박생광》展은 ‘Ⅰ. 전통문화의 형상들: 새로운 한국화’, ‘Ⅱ. 전통문화의 근원: 주술과 신앙’, ‘Ⅲ. 그대로 박생광의 있는 그대로: 드로잉’의 세 섹션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전통문화의 근원과 민족의 정신을 구현한 박생광의 작품세계를 만나보는 뜻 깊은 자리가 될 것이다.
“역사를 떠난 민족은 없다. 전통을 떠난 민족도 없다. 모든 민족의식은 그 민족의 전통 위에 있다.” - 박생광(1985.07.10.)